역사

ICRC 역사

한 사람의 아이디어

ICRC 창설자 앙리 뒤낭(Henry Dunant)

 

ICRC의 창설자 앙리 뒤낭은 스위스인 사업가였습니다. 우연히 한 전투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후 그는 전시 부상자를 돌볼 수 있는 구호 단체를 설립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1863년도에 ICRC가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전 세계 전쟁 피해자를 지원하는 인도주의 기구로 거듭나게 된 ICRC는 150여 년간 주요 분쟁 지역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해왔습니다.

기원과 설립초기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에서 벌어진 전투

프랑스와 사르디니아 연합군이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인 솔페리노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던 1859년 6월 24일,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사업가 앙리 뒤낭(Henry Dunant)은 개인적인 용무로 나폴레옹 3세를 만나기 위해 그 지역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마을에 도착한 뒤낭은 그곳에서 9천 명이 넘는 전쟁 부상자들이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앙리 뒤낭은 수일에 걸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낮과 밤을 잊은 채 이들에게 물을 제공하고 상처를 닦아주며 지극히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제네바로 돌아간 앙리 뒤낭은 그가 목격했던 전쟁의 비참함을 지울 수 없었고, 결국 1862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는 참혹한 전장과 부상병의 모습을 저서에 생생히 기록하였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 짓는데, 이 단순한 질문이 ICRC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시 부상자를 헌신적으로 간호할 수 있는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구호 기구를 평시에 만드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뒤낭은 이어 국제 원칙을 마련해 이를 부상병 구호를 위한 기구의 초석으로 삼을 수 없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관련 원칙의 설립을 유럽 각국의 군대에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기한 이 두 번째 질문이 바로 제네바협약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위원회 구성

V-P-HIST-00113.JPG

ICRC의 전신인 국제부상자구호위원회를 설립한 5인 위원회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솔페리노의 회상」은 당대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사람들 중 안 읽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귀스타브 므와니에 역시 뒤낭의 저서에 큰 감명을 받은 저명인사 중 하나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이자 제네바공익협회를 이끌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1863년 2월 9일, 므와니에는 뒤낭이 책 말미에 던졌던 질문을 그가 이끌던 협회에 소개했고 이것은 결국 앙리 뒤낭, 귀스타브 므와니에(법률가), 기욤 뒤푸르(장군), 루이 아삐아(의사), 테오도르 모누아(의사) 5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결성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앙리 뒤낭이 제기했던 국제 원칙의 제정을 검토하게 됩니다.

국제부상자구호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for Relief to the Wounded)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위원회는 곧 ICRC(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국제적십자위원회)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ICRC는 1863년 2월 17일 최초로 소집되었으며, 같은 해 8월 25일, 군대의 열악한 의료지원을 개선할 방안을 모색하고자 제네바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CRC는 모든 유럽국가 정부와 주요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발송했고, 1863년 10월 26일, 14명의 정부 대표, 6명의 기관 대표, 7명의 개인 참석자 등 총 36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회의는 총 10개의 결의안 채택과 함께 마무리되었는데, 이를 통해 부상병을 위한 구호 단체의 설립, 다시 말해 각국의 적십자사 혹은 적신월사 탄생의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제네바협약의 채택

1864년 8월 8일부터 24일까지 16개국 정부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외교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1864년 8월 22일 회의에서는 ICRC가 준비한 협약 초안에 대한 기조 논의가 이루어졌고, ‘육전에서의 군대 부상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최초의 제네바협약’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로써 근대 국제인도법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협약은 1864년 말까지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및 바덴 대공국이 비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864년 최초의 제네바협약은 1949년 4개 협약과 2개 추가의정서로 보완되었고, 이는 ICRC 활동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제네바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