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사나 센터 부대표단의 (Sana’a Center Sub-Delegation) 전 대표 마리아테레사 카치아푸오티 (Mariateresa Cacciapuoti)는 2019년 시작한 미션을 회상합니다.
2021년 4월 23일 예멘
가족들에게 예멘에 간다고 말했을 때 저를 사로잡았던 오묘한 감정들이 기억납니다.
2019년 크리스마스에 저는 맛있는 이탈리아 가정식이 올려져 있는 긴 탁자에 앉아 가족들과 전통적인 이탈리아식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멘으로 떠나는 제 다음 미션에 대해 가족들에게 말하는 것이 걱정스러웠습니다.
인도주의 활동가로 15년간 일하며, 가족은 제가 전 세계의 무력 충돌 지역과 전쟁 지역으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예멘으로 출국하겠다는 소식이 너무 충격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할 적당한 때를 찾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이 해물 스파게티를 내놓는 순간 저는 소식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해산물은 스파게티 면이 따뜻할 때 먹어야 하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순간에는 그 누구도 불필요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심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제 다음 미션이 예멘이에요. 몇 주 뒤에 떠날 거에요.”
예상대로 가족의 절반은 스파게티에 집중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실망과 걱정이 뒤섞인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멘?”이라고 되물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던 중 마침내 어머니가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는 그곳에 가야 한단다.”
이것이 ICRC와 함께하는 제 활동의 본질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면 이 “누군가”는 과연 누구일까요? 확실한 것은,
그 “누군가”가 장기간 지속된 무력 충돌로 인해 너무나 가혹한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후에 저녁 식사를 맛있게 즐겼습니다. 하지만 이건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가족들을 다시 안아줄 수 있게 되기까지 1년 이상이 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코로나19의 시대가 이제 막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40번째 생일에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를 목격했고 아덴 공항 폭발 사고로 동료들을 잃게 되어 고통스럽게 2020년을 마쳤습니다. 예멘인들에게 있는 회복력이 저에겐 없었다는 것을 재빨리 깨달았습니다.
예멘에 입국을 할 때 바로 보이는 파괴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당시엔 그들의 회복력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예멘은 가능한 모든 역경을 축적하고 결합할 수 있는 나라처럼 보였고, 끊임없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미션 첫날, 사나에 위치한 ICRC 대표단 건물에서 길을 잃었을 때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서로 불분명하게 연결된 복도의 미로에서 헤맸을 때, 이것은 제 예멘 미션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가 ‘록다운’(전면 봉쇄)을 시행하는 동안 저는 예멘 전역을 여행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코로나19 격리 센터를 지원하고, 최전방 지역에 고립된 지역사회에 식량과 의료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독특하고 숨 막히게 아름다운 건축물과 화려한 창문으로 가득한 예멘의 수도 사나(Sana’a)를 여행하였습니다. 이후 역동적인 도시 다마르 (Dhamar)를 지나 이브브 주 (Ibb Governate)로 안내하는 푸른 계곡을 통해 광활한 농장이 있는 남쪽 도시 알-달레 (Al-Dhale)로 향했습니다.
사나에서 마리브(Marib)로의 길고 힘든 여행을 하며 대부분의 예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풍경을 ICRC 항공기에 타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RED (ICRC 항공기 코드명)가 공항에 접근할수록 어부들과 작은 어선들이 보이는 아름다운 아덴(Aden) 만은 점점 더 화려해집니다.
RED가 아덴만 주변을 장엄하게 순회하면 바닷물이 느껴지고, 물고기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바닷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멘에서 제 주변의 아름다움을 볼 때면,
주위를 둘러싼 황폐함을 잊곤 합니다.
사나의 신선한 공기, 아덴의 물, 하드라마우트(Hadhramaut)의 사막, 이브브 계곡의 들판으로 이루어진 예멘은 과연 모든 자연경관을 담은 물감판과 같습니다.
세윤 (Seyoun)에서 마리브까지 여행하는 것은 저만의 특별한 천일야화였습니다. 400km의 도로는 장엄한 돌로 둘러싸여 있고, 새벽의 첫 빛줄기와 일몰의 마지막 순간에 햇볕은 산등성을 밝힙니다.
낙타로 맞이하는 긴 길을 떠나기 전 차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면 사막의 맨해튼이라 불리기도 하는 낭만적인 시밤 도시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막의 많은 군사 검문소는 반세기 간 진행된 무력 충돌 또한 경관의 일부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러한 무력 충돌 상황에 인구의 80% (3,050만 명 중 2,400만 명)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이 분쟁은 제가 방문한 사나, 다마르, 알 바이다(Al Bhaida), 이브브, 알-달레, 하드라마우트, 마리브의 거의 모든 주, 도시,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경제적 현실을 악화시켰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ICRC 부대표단의 대표로서 저는 알 자와프 (Al Jawaf), 마리브, 알 바이다, 알-달레, 타이즈(Taiz)까지 확장된 최전방 지역을 책임졌습니다. 저는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 영안실에 쌓여있는 시체, 그리고 넘쳐나는 환자의 수에 압도당했습니다.
학교는 종종 비어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최전방 지역의 검역소에 있었고,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영안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병원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영양실조 치료를 위해 도움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멘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여전히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공유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미소 뒤에 수천개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의 충돌은 보이지 않는 상처와 보이지 않는 고통을 남겼습니다. 예멘 사람들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 진행 중인 무력 충돌의 종말을 향한 전 세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예멘에서 보낸 1년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예멘 사람들은 반세기 간 지속된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전쟁이 끝날 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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